현대인과 현대신학의 거장들이 만나다! -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칼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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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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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으로의 전환: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가슴의 신학’

<낭만주의 시대의 스타 신학자, 베를린을 사로잡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1768-1834)는 ‘근대 신학의 아버지’라는 묵직한 칭호를 가졌지만, 그의 삶은 딱딱한 신학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낭만주의 운동이 한창이던 18세기 말 베를린의 사교계를 주름잡던 스타 지식인이었습니다. 개혁교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경건주의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지만, 청년 시절 그는 이성의 차가운 빛에 매료된 계몽주의자들과 예술과 감성의 뜨거움을 예찬하던 낭만주의자들 사이에서 지적 방황을 거듭했습니다.
당시 베를린의 지성인들은 교회를 ‘문화인의 무덤’이라 여기며 조롱했습니다. 바로 이 “종교를 경멸하는 교양인들”을 향해, 29세의 젊은 슐라이어마허는 《종교론》이라는 한 권의 책을 던졌습니다. 이 책은 즉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그는 단숨에 베를린 지성계의 총아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종교의 본질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낡은 교리나 따분한 도덕이 아니라, 인간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라고 선언하며, 이성의 시대에 감성의 언어로 신앙의 자리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에는 애국적인 설교로 독일 민족의 정신을 일깨운 국민적 영웅이었고, 베를린 대학 설립에도 깊이 관여한 교육개혁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삶은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성, 신앙과 문화가 어떻게 한 인격 안에서 만나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였습니다.
<핵심 사상: ‘절대 의존 감정’ - 내 안에서 우주를 느끼는 순간>
슐라이어마허 신학의 심장은 ‘절대 의존 감정’이라는 개념에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쁨이나 슬픔 같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생각과 경험 이전에 존재하는, 인간 실존의 가장 근원적인 자기 인식입니다.
그의 설명을 따라가 봅시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에 영향을 받고(의존), 때로는 세상에 영향을 줍니다(자유). 이처럼 우리는 세상과 상호작용하는 ‘상대적 의존’ 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의 존재 전체가 궁극적으로 내가 만들지 않은 어떤 거대한 실재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마치 거대한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조각배처럼, 내 힘만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깊은 자각입니다. 슐라이어마허는 바로 이 무한하고 영원한 실재, 즉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직접적이고 전적인 의존의 감각이야말로 ‘신 의식(God-consciousness)’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혁명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신앙의 출발점이 더 이상 성경 말씀이나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내면의 깊은 체험이 된 것입니다. 교리는 이 원초적인 종교적 경험을 설명하기 위한 2차적인 언어에 불과합니다. 이로써 그는 과학이 침범할 수 없는 신앙만의 고유한 영토를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이 혁명적인 전환에는 그림자가 따랐습니다. 신앙의 근거를 인간의 주관적인 ‘감정’에 두었을 때, 내가 느끼는 신이 과연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하나님인지, 아니면 내 감정의 투사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느냐는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헤겔은 만약 신앙이 절대 의존의 감정일 뿐이라면,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개가 최고의 기독교인일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현대 교민에게 주는 메시지: 낯선 땅에서 만나는 내면의 하나님>
슐라이어마허의 철학은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교민들에게 깊은 위로와 통찰을 줍니다. 이민 생활은 종종 우리를 지탱해주던 외부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입니다. 익숙한 언어, 문화,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깊은 소속감의 상실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바로 이때, 슐라이어마허는 우리에게 바깥이 아닌 ‘안’으로 눈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그의 ‘절대 의존 감정’은 낯선 환경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이나 외로움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할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더 큰 존재에 우리 자신을 의탁하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교회의 문턱이 높게 느껴지거나 전통적인 교리가 낯설게 다가올 때, 그의 신학은 우리에게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당신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광활한 자연 앞에서, 혹은 아이의 잠든 얼굴을 보며 느끼는 그 경이로움과 감사함 속에 이미 신과의 만남은 시작되고 있다고 말입니다. 낯선 땅에서의 삶이 우리를 더 깊은 내면으로 이끌고, 그곳에서 흔들리지 않는 영적 뿌리를 내리게 하는 여정이 될 수 있음을 슐라이어마허는 보여줍니다.
빨갱이 목사에서 20세기 최고의 신학자로 - 칼 바르트

만약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이 잔잔한 호수 같았다면, 칼 바르트(1886-1968)의 신학은 그 호수 위로 내리꽂힌 거대한 번개와 같았습니다. 그는 슐라이어마허로부터 시작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전체에 대해 천둥과 같은 ‘아니오(Nein)!’를 외치며 신학의 물줄기를 완전히 되돌려 놓았습니다.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 자펜빌의 목사였던 젊은 시절, 그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임금 인상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자펜빌의 빨갱이 목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의 스승들은 당대 최고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고, 그 역시 인간의 이성과 문화 속에서 신의 나라가 점진적으로 실현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신학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의 세계는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가 존경했던 93명의 독일 지성인들, 심지어 그의 스승들까지 전쟁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고 그는 경악했습니다.
인간의 이성과 문화가 얼마나 쉽게 야만적인 폭력의 시녀가 될 수 있는지를 목격한 그는, 인간의 경험 속에서 신을 찾으려는 모든 시도가 결국 인간 자신을 신격화하는 우상숭배에 불과하다는 뼈저린 결론에 이릅니다.
이 깊은 환멸 속에서 그는 성경, 특히 로마서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로마서 강해》입니다. 이 책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 불리며, 20세기 신학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습니다. 훗날 그는 히틀러에 맞서 싸운 고백교회의 신학적 토대인 ‘바르멘 선언’을 작성하며, 신앙이 불의한 권력에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핵심 사상: 하나님은 ‘전적으로 타자’이시다>
바르트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에 대한 강조입니다. 슐라이어마허가 인간 내면의 연속선상에서 신을 찾으려 했다면, 바르트는 하나님이 우리의 경험과 이성, 감정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전적으로 타자(Wholly Other)’임을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을까요? 바르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길, 즉 ‘자기 계시’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계시의 유일하고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학의 과제는 더 이상 인간의 종교적 감정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증언되고 교회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동료 신학자 에밀 브루너와의 유명한 ‘자연신학 논쟁’에서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브루너는 복음이 사람들에게 전달되려면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 속에 일종의 ‘접촉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어떠한 접촉점도 남아있지 않다고 맞섰습니다. 그가 이토록 단호했던 이유는, 당시 ‘독일 민족의 피와 땅’과 같은 자연적인 것에서 신의 계시를 찾으려 했던 나치 치하 ‘독일 기독교인들’의 위험성을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현대 교민에게 주는 메시지: 모든 문화를 심판하는 하늘의 기준>
칼 바르트의 신학은 다양한 문화와 가치관이 충돌하는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교민들에게 날카로운 분별력을 제공합니다. 낯선 땅에서 우리는 종종 문화 상대주의의 도전에 직면합니다. "여기서는 이게 맞는 거야", "네가 살던 곳의 방식은 잊어버려"라는 말들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흔들리기 쉽습니다. 때로는 성공과 부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사회의 압력 속에서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이때 바르트의 신학은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와 함께 확고한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그 어떤 인간의 문화나 가치 체계도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사회가 미국이든, 유럽이든, 혹은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든, 그 모든 문화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적인 기준 앞에서 심판받아야 할 상대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바르트의 신학은 우리에게 '성공'이나 '적응'이라는 이름의 우상에 무릎 꿇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대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어떤 문화 속에 살아가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라고 촉구합니다. 이 하늘의 기준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모든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적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됩니다>
<홍영표>
전오클랜드한인회장. 연세대졸업(신학사)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MBA)
*한신대 신대원 M.Div졸업( 신학석사)
*한신대 일반대학원 철학박사( P.h.D)과정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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